원자력 영화/TV 이야기 – 뉴스레터 4호

‘재난’이 된 재난영화, 『백두산(2019)』

위덕대 한국어학부 김명석 교수
해오름동맹 원자력혁신센터

『백두산(2019)』은 300억원의 제작비로 825만 관객을 동원한 블록버스터이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2021년 백두산이 분화하고 남한에까지 엄청난 지진, 해일이 발생한다. 강봉래 교수(마동석 분)는 마그마 방이 네번째까지 다 폭발하면 한반도가 쑥대밭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대안은 백두산 지하에 핵폭발을 일으켜 용암을 새게 하고 위로 분출되는 압력을 줄이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북한의 핵무기를 탈취해서 백두산 지하에 핵폭발을 일으키기로 한다. 조인창(하정우 분)이 이끄는 부대가 핵무기의 행방을 아는 리준평(이병헌 분)을 데리고 간다.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백두산 지하에 핵무기를 터뜨려서 더 큰 참사를 막는다. 리준평은 자신이 목숨을 버림으로써 민족의 공멸을 막고 조인창은 리준평의 딸을 데려와 자기 자식으로 키운다. 강봉래 교수는 미국에 가서 신재생에너지를 연구하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 귀국한다.

영화 ‘백두산’ 포스터

재난영화 장르로 분류되는 이 영화의 흥행 공식은 유머, CG, 호화캐스팅 등이다. 배우 이병헌과 하정우의 출연은 최고의 라인업이다. 흥행 클리셰 덩어리라는 혹평이 있지만 흥행의 공식을 지키면서 성공했으니 칭찬할 만하다. 공식대로 만든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신파로 감동을 쥐어짜는 연출이 부담스럽고 너무 뻔한 후반부의 전개는 기운을 빠지게 한다.

이해준 감독은 극본이 돋보이고 김병서 감독은 카메라 작가로서 뛰어나다. 여기에 『신과 함께』의 김용화 감독이 제작진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무려 90%에 가까운 장면을 CG로 채워넣은 영화 『신과 함께』를 제작한 덱스터 스튜디오가 맡은 CG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30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들인 스케일과 CG에 대해서는 호평이 많다. 그런데도 전반적으로 호평보다 혹평이 많은 것은 제작비에 비해 스토리가 느슨해서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으나 캐릭터 설정이 진부하다. 특히 조인창은 능력 없고 징징거리는 초등학생처럼 보인다. 대신 영화는 누구나 예상 가능할 만큼 매뉴얼에 충실하다. 영화를 본 이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것은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이다. 『더 록(1996)』, 『볼케이노(1997)』…, 특히 『아마겟돈(1998)』이 그렇다. 도심 붕괴 장면, 핵무기를 이용한 재난의 극복, 인물 형상 특히 부녀관계와 대사 등은 그대로 도용했다고 할 정도이니. 목숨을 건 특수요원들이 핵탄두를 기폭장치에 넣고 백두산 탄광 동굴에서 폭파시키는 것도 그렇다. 『아마겟돈』에서는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소행성에 구멍을 뚫어 핵무기를 폭파시키는 설정이 있다. 한편 한국의 탈원전 영화 『판도라(2016)』에서 누구 하나의 희생으로 국가와 민족을 구하고 온 인류를 구하는 결말을 『백두산』은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과거 여러 차례 대폭발이 있은 만큼 백두산은 활화산으로 분화 가능성이 충분하다. 만약 영화에서처럼 백두산이 폭발하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영화의 이런 설정은 허무맹랑한 픽션만이 아니다. 영화 초반부에 강교수는 자신의 브리핑을 듣는 정부 요원의 아메리카노 컵을 빼앗아서 옆면에 구멍을 내 버린다. 땅속으로 용암이 흘러 나오게 하여 위로 분출하는 압력을 줄이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화산 분화의 압력을 줄이는 것은 종이컵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핵폭발이 일어나면 폭발로 인해 나오는 지진파가 마그마방 안으로 들어와 분화를 더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핵무기와 관련하여 계속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핵 운반장치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리준평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온다. 문제는 무게인데 영화에 따르자면 내부에 6개 분량의 핵물질이 들어있다고 한다. 방사능 누출등 안전을 고려하면 특수 가공이 되어 있을 것이고 무게는 더 늘어난다. 영화 초반부에 차로 운송을 하는 것에 대한 안전성은 차치하고 후반부로 가면 편하게 들고 다닌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병헌 혼자 끌고 다닌다.

영화는 픽션을 대본으로 하고 미장센으로 꾸며진다. 관객의 재미를 위한 영화적 상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아쉬운 것은 원자력에 대한 발상이다. 영화에서 원자력은 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 막바지에 강동래 교수는 미국으로 신재생에너지를 공부하러 갔다 온다. 그는 백두산의 분화 가능성을 주장한 전문가로 나오기 때문에 아마도 화산 지역의 지열발전을 연구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NASA가 발표한 “슈퍼화산 식히기 프로젝트”를 참고할 만하다. 슈퍼화산은 옐로스톤 공원에 있는 20여 개가 넘는 화산을 일컫는다. 옐로스톤의 열 60~70%가 마그마 방 내의 틈에서 나오는 물을 통해 밖으로 분출된다. 화산 주변에 길이 10km의 구멍을 파서 높은 압력으로 물을 넣어 순환시킨다. 이렇게 마그마 방의 열을 30%만 나오게 하면 화산활동을 막고 에너지도 생성할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다. 화산 활동을 막으면서 지열발전도 함께 하자는 것이다.

지열발전이란 지하의 심층에서 증기나 열수의 형태로 열을 받아들여 발전하는 방식이다. 지열은 무한한 에너지원이며 친환경적으로 보인다. 요즘 한국에서 많이 건설되는 풍력발전이나 태양광발전은 날씨와 기후에 영향을 받아 24시간 전력생산이 불가능하지만 지열에너지는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또 원자력에너지보다 안전해 보인다. 지열발전이 가장 발전한 나라 아이슬란드에는 약 30개의 활화산이 있다. 아이슬란드도 일본처럼 온천으로 유명하며 활화산이 유명 관광자원이다. 국가 에너지 대부분을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특별한 케이스로 아이슬란드의 에너지원 대부분은 바로 지열이다. 북한의 백두산도 마그마가 있고 화산 활동이 이루어지는 활화산이기 때문에 충분한 열이 존재한다. 그래서 백두산은 지열 발전을 하기에 적절한 장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한한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지열발전은 과연 자연친화적이고 위험성도 낮을까?

포항 흥해는 한국 최초의 지열발전소가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주지하듯이 2017년 11월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물을 주입할 때마다 인근 2km 지역에서 작은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열발전소 측은 이를 부인하면서 계속 가동하려 했지만 결국 지열발전소는 무기한 중단되게 된다. 이후 조사가 이어졌고 2019년 3월 정부 조사단은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이 촉발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포항지진으로 인한 시설물 피해는 총 2만 7천 317곳에서 발생했으며 피해액은 551억원에 달한다. 2016년 경주지진 당시 집계된 피해액 110억원의 5배가 넘는 규모다. 현재까지도 보상을 둘러싼 주민들과 발전소 사이에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포항 지열발전소가 보여주는 교훈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자연친화적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무분별한 도입은 대재앙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포항 지열발전소는 화산의 지열을 이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땅 속에 물을 주입하는 지열발전 시스템이다. 영화 『백두산』에서 핵폭발로 마그마방의 압력을 줄이는 방법이 성공을 거두자 강교수는 땅 속 마그마방에 물을 주입하려는 모양이다. 핵폭발로 화산 분화를 억제한다는 발상이 영화 속 설정일 뿐이지만 경계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영화 속 과학적 오류와 개연성 문제를 파면 팔수록 나오는 것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아니라 가공할 위험성이다. 그것은 무분별한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에 기인한다. 포항 지열발전소 건립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재앙을 낳았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신재생에너지가 곧 친환경 미래에너지인 양 홍보되고 있다.

이 영화는 백두산 지하에 대형폭탄(blockbuster)을 터뜨려서 블록버스터(대작 영화)가 되었다. 지하 핵폭발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와서 관객들에게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되새기게 했으나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했다. 이웃나라 일본에도 활화산이 많고 지열발전소가 꽤 있지만 화산은 온천수를 활용한 관광산업으로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대신 산업용 전기는 원자력에 의존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열은 발전소보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Related Pos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를 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