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영화/TV 이야기 – 뉴스레터 8호

원자력의 이상, 『우주소년 아톰』

위덕대 한국어학부 김명석 교수
해오름동맹 원자력혁신센터

『철완 아톰(1954)』은 테즈카 오사무에 의해 1952년부터 연재되었고 1963년 TV애니메이션 『아톰』으로 처음 방영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는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제목으로 1970년 방영되었는데 일본의 『철완 아톰』과 미국에서 방영되었던 『Astro Boy』를 합친 이름이다.

테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과 『Astro Boy』

아톰은 세계 최초로 소년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커다란 눈망울에 둥근 얼굴을 한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서구 SF영화 속의 로봇과 사뭇 다르다. 당시 함께 활약했던 애니메이션 속 일본 로봇인 철인 28호, 짱가, 마징가 제트 등 원격조작 탑승 로봇들과도 다르다. 이들은 서구의 로봇처럼 거대한 체구에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반면 인공심장을 가지고 있는 아톰은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지닌 소년 로봇이다. 텐마(天馬) 박사는 교통사고로 잃은 아들과 꼭 닮은 로봇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처럼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실패작이라며 서커스단에 팔아 버린다. 오차노미즈 박사는 아톰을 데려와 초등학교에 다니게 한다. 아톰은 사람과 같은 외모를 지녔지만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아톰은 나쁜 일을 막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인간에게 차별받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만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운다.

아톰은 악한 마음이 없다. 테즈카에게 선과 악은 모두 사람다움(휴머니즘)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아톰은 악한 마음이 없으니까 완전하지 않다.”는 『철완 아톰』의 명대사로 꼽힌다. 당시 일본은 전후 혼란 속에 오키나와 출신, 홋카이도 출신, 또 조선인이나 혼혈 등에 대한 차별이 횡행하는 사회였다. 『아톰』은 바로 일본사회의 차별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별을 비판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톰의 성장사에는 원자력의 역사가 겹쳐진다. 아톰은 체구는 작지만 ‘아톰(Atom)’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원자력을 에너지로 한다. 10만 마력의 원자력 모터를 장착한 엔진의 제트 추진기로 하늘을 날며 인간의 천 배나 되는 청력과 전자두뇌를 가지고 있다. 어느 에너지원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효율에도 불구하고 위험이 과장되면서 따돌림 당하는 아톰은 원전을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들에게서 따돌림 당하지만 순수한 소년의 마음으로 인간을 구하고 정의의 영웅이 되는 것은 모든 원자력 종사자들의 이상이다. 일본의 로봇연구가인 우매타니 요우지(梅谷陽二)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카라쿠리인형을 의인화하고 애완동물처럼 인식한 것처럼 친근감, 동료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인식이 로봇 개발의 기술을 지지하는 효과적인 역할을 했다는데 ‘모든 것에 마음이 깃든다’고 믿는 일본의 정령신앙도 한몫했을 것이다.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는 아톰이라는 AI 로봇이 원자력 기술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바로 비인간(nonhuman)에 적극적 역할을 부여해서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행위자로 보고, 차별하지 않는 견해다. 만화에서는 아톰이 만들어지고 난 후 로봇법이 제정되어 인간과 차별없이 지내도록 한다. 이것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인데 ANT는 인간이든 로봇이든 수백 개의 이종적 네트워크가 집적되어 만들어낸 개체라고 보는 것이다. 아름다운 신보다 괴물이 이상적 형상이며 사이보그야말로 인간 재구성의 초석이라는 생각, 그렇게 우리는 아톰을 고도화된 과학사회의 상징으로 보고 그에게서 인류의 미래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테즈카는 아톰을 통해 정의를 말하려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일본로봇학회지와의 좌담회에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중개자의 의미였습니다. 인간이라는 생물과 기계라는 것은 결국 아무런 접점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을 『철완아톰』으로 어찌되었든 접촉하려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아톰은 정의의 사자 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반인간, 반기계로봇이라고 할 수 있죠. 확실하게 말하면 인간에게도 의붓자식이고 기계에게도 의붓자식인 셈입니다.”

오늘날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과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데즈카가 아톰에게 어린 아이의 얼굴과 선한 마음을 덧입힌 것은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으로서이다. 그것은 인간과 기계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중개자)이다. 테즈카가 아톰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정의가 아니라면 인간 즉 휴머니즘일 것이다. 이것이 그가 『철완 아톰』을 비롯해 철저한 반전주의와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경계의식을 가지고 생명 존중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추진해온 이유이다. 그러나 그가 전쟁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것은 아니다. 『철완 아톰』에서 그리는 미래에는 전후 부흥과 재건의 시기였던 쇼오와 시대가 투영되어 있다. 테즈카는 원폭 낙진으로 잿더미가 된 일본에서 디즈미 애니메이션을 꿈꾸었다. 그는 전쟁을 증오하면서도 전쟁을 이야기하는 평화주의자이다. 쇼오와 시대 일본은 패망했지만 이웃나라에 군국주의의 망령을 거두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아톰은 2010년에 와서 극장판 풀3D 『Astro Boy』로 다시 태어난다. Astro Boy는 세 가지 요소의 결합체이다. 첫째, 죽은 아들의 기억이 내포된 DNA, 둘째, 최강 병기로 가득 차있는 금속 신체, 셋째, 사멸한 혜성으로부터 채취한 무한에너지이다. 바로 인간, 사물, 에너지가 결합된 로봇이 Astro Boy다. 원전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건설한 것이 원전이다. 그런데 1963년의 아톰이 원자력으로 10만 마력의 힘을 내는데 2010년 Astro Boy는 우주에너지로 100만 마력의 힘을 낸다. 하늘을 나는 아톰의 추진동력이 원자력에서 정체 불명의 우주에너지로 바뀐 것은 시대가 바뀐 탓일 것이다. 1950~60년대에 가공할 미래에너지로 여겨지던 원자력은 그동안 여러 찬반논쟁 때문만이 아니라 미래세계에서 그대로 쓰기에는 진부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애니메이션 작가의 상상일 뿐이다. 아무튼 『Astro Boy』에서 대통령은 우주에너지를 재선에 결정적으로 활용하려 하지만 로봇 소년은 이를 가지고 도주한다.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대통령은 괴물 로봇과 합체해서 로봇 소년과 정면 대결을 벌인다.

『Astro Boy』의 공간은 하늘에 떠있는 메트로시티와 지상의 서피스로 나뉘어진다. 메트로시티는 로봇이 모든 일을 대신해주는 곳으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위생 도시이며 문명세계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계로 공중에 떠있는 이 도시는 에너지가 끊어지면 지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한편 서피스는 메트로시티에서 추방되거나 가출, 망명한 인간들이 있는 곳이며 폐기된 로봇이 버려진 게토 지역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수많은 SF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아톰이 활약하는 미래 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계급 격차가 여전하고 쓰레기가 넘치는 미래는 암울하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도시 지역의 엔트로피(무질서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제조해서 쓰레기를 배출해야 한다. 그것은 전체계의 엔트로피를 높이고 유기적인 모든 것을 무기화시키게 된다. 그렇게 서피스에는 CO2가 쓰레기처럼 배출된다. 로마시대 노예의 품귀가 귀족권력을 강화시켰듯이 에너지원의 부족은 과두지배를 나을 것이다. 『Astro Boy』에서 대통령이 괴물 로봇과 결합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에너지 위기+과두지배’의 정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메트로시티와 서피스

위생 도시이며 문명세계인 메트로시티가 미래의 재생에너지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서피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CO2를 무한 배출하는 화석연료가 지배하는 세상의 알레고리다. 사멸한 혜성에서 나온 미래에너지라는 모호한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원작 『아톰』의 에너지원인 원자력에너지의 장점을 떠올리게 한다. 핵폐기물을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하는 4세대 원자로에서 나오는 CO2와 미세먼지 배출 0의 청정에너지 말이다.

재선프로그램에 광분한 대통령이 거대한 로봇이 결합된 것은 인간과 사물의 결합체이며 국가, 정치권력과 과학, 자본권력의 결합체이다. 대통령은 정치 뿐 아니라 과학, 기술, 자본 권력이 합쳐진 직책으로 나타난다. 게토 지역에서 승리하지만 Astro Boy는 대통령에 의해 메트로시티로 압송된다. 이곳에서 Astro Boy는 대통령과 대결을 벌이고 과두정치 지배는 무너진다. 그리고 메트로시티는 지상으로 추락한다. 그러나 Astro Boy를 만든 텐마 박사가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Astro Boy를 부활시킨다. 영웅이 나락에 떨어져도 살아나오는 것은 인류문명사의 영웅에게 흔한 이야기이다. Astro Boy의 부활로 게토세계인 서피스에 문명세계 메트로시티가 연착륙하고 쓰레기로 가득 찬 게토세계가 청정에너지 지역으로 변모한다.

과학의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에도 아톰은 계속 리메이크되고 있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힘에 캐릭터를 부여한 로봇으로 핵폭발의 파괴적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원전보다 관리하는 사람이 무섭다고 한다. 원전은 안전하게 설계되어 건설되었을지라도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나 비리로 한순간 봇물터지듯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같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21세기에 로봇과 어떻게 공존할 지가 근래 회자되고 있다. 원전은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 안전할지 AI가 관리하는 것이 안전할지 지금 답할 수는 없다. 아직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았듯이 일본과 달리 서구에서 인공지능(AI) 로봇이 여전히 경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그래서이다. 그러나 아톰은 계속 리메이크될 것이다. CO2와 미세먼지 배출 0의 청정에너지를 동력으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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